과거에는 매매 창구에 직접 가거나 전화를 통해 대리 매매를 했었다.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에도 보안 문제 때문에 이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었다. 영웅문 같은 주식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매매를 하는 사람들도 늘었지만 여전히 '전문가'의 영역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주식 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앱을 통해 간편하게 그리고 직접 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이처럼 이제 주식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만큼이나 간단한 투자방법이 됐다. 주택에 투자하려면 초기 자금이 어머어마하게 필요하지만 주식은 증권계좌에 넣을 돈 단 몇만 원만 있어도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진입장벽이 문지방보다 낮다.
이처럼 손쉽고 간편한 주식! 지금 당장 시작해볼까? 당신이 아직 투자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시작하기는 쉬워도 그만두기는 어렵다.
주식판에는 격언들이 많은데 그 중 "사는 것보다 파는 게 어렵다"는 말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식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주식의 법칙을 넘어서 인생 자체를 통달하고 얻은, 나름대로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이 격언으로 여겨지고 있을까?
'돈을 벌었을 때 팔면 되는 것 아닌가?' 아직 주식투자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투자를 시작해보면 그 '돈을 벌었을 때'를 이성적으로 인지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투자한 자금 대비 수익을 절대적 수치로 인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주식판에서 투자한 자금 즉, '본전'은 항상 변한다. 그게 문제다.
손실구간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투자금이 내 본전이다. 이건 당연하다. 주가가 하락한 만큼 돈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가가 상승하더라도 본전에 도달하지 못하면 아직 수익구간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수익구간에 있는 경우다. 아주 희한하게도 주가가 최고점이었던 시기를 본전이라 생각하게 된다. 초기 투자자금에 비해 수익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이 아닌 손실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이성을 사로잡기 십상이다. 애초에 갖지 않았을 때는 아무 감정도 없지만, '받았다가 다시 빼앗겼을 때'의 억울함을 생각해 보라.
결국 주식을 하는 내내 아무리 수익을 보고 있더라도 '손실을 봤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주식판에 있는 이상 영원히 손실구간인 것이다.
보통 주식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어리석은 투자행태에 혀를 찰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도 주식투자를 시작하기 전에는 주식을 팔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투자자가 되었을 때 예전의 객관적 시각을 계속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곧 깨닫게 됐다. 나는 생각 이상으로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과감하게 매도와 매수를 결정하는 투자고수를 보면 사단칠정을 떨쳐낸 성인군자를 보는 듯했다. 그게 아니면 인간성을 상실한 컴퓨터와 같은 사람이거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식 투자에서 반드시 패하고 만다. 설사 수익을 보고 주식을 끝내더라도 승리의 축포를 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패배의 아픔에 대한 보상심리는 나보다 더 망한 사람을 찾아 위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보다 더 번 사람을 볼 때마다 배아파하는, 자본에 잠식된 도덕적 해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래서 사는 것보다 파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살 때는 별 고민 없이 사지만, 팔 때는 손해를 보고 있어도 못 팔고, 수익을 보고 있어도 못 판다. 기계적 매매가 중요하다는 말은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당신은 기계적으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사람인가? 감정을 억제하고 논리와 이성, 수학적 확률과 %에 대한 객관적 분석으로 주식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주식을 시작해볼만 하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주식을 섣불리 시작하지 말기 바란다.
주식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 만큼 주식을 손에서 내려놓기도 어려운 세상이니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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